Book Review

눈부신 안부


어린 시절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를 찾으려 했던 주인공 해미는 20여 년이 지나 다시 한번 K.H.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투영하며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간다

무의미한 묘사를 위한 묘사들로 가득한 문장이 난무해서 읽다보면 갈곳을 잃고 글 속을 헤매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표지에 적힌 대로 정말 문장이 아름답고 여러번 음미하게 만든다.
연휴에 잡은 소설들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레나를 좋아하는 일이 아침햇살 아래 부드럽게 몸을 드러내는 연둣빛 들판처럼 완만한 것이었다면, 한수를 좋아하는 건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슬픔과 벅차도록 밀려오는 기쁨의 계곡 사이를 곡예하듯 걷는 현기증 나는 일이었다.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 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그건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이번엔 내가 물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 하니까."
우재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곤 했지만 나는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Alles ist noch unents chieden. Man kann werden, was man will.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보며 더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 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