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의 소설은 항상 먹먹함이 있다. 

이 단편집은 젊은 날, 서로에게 상처주고

자신을 위하여 방어벽을 세우고, 시간이 지난뒤 기억을 소환하는 의연함을 보여준다. 

젠더나 여성주의에 대한 현재의 시선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단편인 '아치디에서'가 제일 맘에 들었다. 

 

난 항상 열심히 살았어.
하민은 종종 그 말을 했다. 나는 '살다'라는 동사에 '열심히'라는 부사가 붙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hard'는 보통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말 아닌가. 'hardworking'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하민이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을 하 는지 궁금했다. 자기를 몰아붙이듯이 살았다는 것인지, 별 다른 재미 없이 살았다는 것인지, 열심히 산다는 게 그녀 에겐 올바르다는 가치의 문제라는 것인지, 삶의 조건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는 것인지 말이다. 그녀가 그 말을 할 때, 그래서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 에 대한 미음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을 것들을 잔뜩 쌓아놓고 먹으면서 나는 웃고 또 웃었다. 비루한 현실은 그 나른한 피로 속에서 엷게 빛났고 폭발하는 웃음은 내 게 위안을 줬다. 그러나 공허했다. 잠에서 깨어나 먹다 남은 음식들과 함께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취한 눈에 빛나 보이던 것들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색이 바랜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그러더라. 네가 약해 보이니까, 만만해 보 이니까 그런 거라고. 죽일 기세로 한 번이라도 덤벼봤냐 고, 미친놈처럼 맞서봤냐고, 당하고만 있으니까 널 얼마 나 쉽게 봤겠냐고, 다 네 탓이라고, 네가 여지를 줬다고, 어떻게 네가 내 아들일 수 있냐고. 네 형들은 한 번도 이 런 적 없었다. 치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