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법정의 얼굴들

 

저자는 지속적으로 외면된 약자, 홀로 된 개인을 방치하거나 감히 희생시키지 말고, 공감하고 공존하고자 외친다. 

 

공감이 소수에게만 집중되도록 해선 안 된다. 그 소수는 반드시 무감해지거나 부서지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매번 뜨겁게 공감하면서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통과 공감은 냐눠야 한다. 모두가 함께 아플 순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단, 돌아가며 골고루 아파야한다.
법정에서 본 가난 중 웃기는 가난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가난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더욱 참담한 비극일 뿐이다. (중략) 가난은 처음도, 그 다음도 항상 비극이다.


특히 약자에 대한 혐오 중 여자혐오 범죄에 대해서는 왜 공감하려 들지 않는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는데,

그 대상자분류에 포함되는 1인으로서 동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역사적으로 여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면당해왔다
피아노 건반사이즈에서부터 자동차 충돌실험 인형 더미도 남자 기준이고 하다못해 미국 실내 평균 적정온도도 백인남성 기준인 게 현실인데 이미 모두가 그 기준에 익숙해져 버려서 심각성을 느끼지도 못한다
페미니즘의 근간이 되는 양성평등알 추구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법적 가치이다.

 

한 달 사이 에 뉴욕에서 발생한 폭행사건 100건 증 95건의 피 해자가 아시아인이라면 인종혐오 범죄로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여성을 대입하면 어떤가? 우린 아동학대를 보면 표현능력과 보호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범죄임을 자연스럽게 인지한다. 아동학대를 두고 피해자가 연령을 아우르는 불특정 다수일 가능성이 있는 묻지마 범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냐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지적장애인이 범행 대상이 된 게 아니다. 속이기 쉬워서든, 스스로 보호할 힘이 부족해서든, 장애인이 피해자인 명백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볼 때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사회경제적 지위, 힘의 우열, 보호 및 종속 관계, 범행의 동기 등을 모두 고려하기 떄문에 그 맥락을 금방 파악한다. 그런데 왜 유독 여성을 골라 살해한 범죄는 전후 맥락을 자꾸 지우려 할까? 우리는 정인이냐 김용균은 물론 가정폭력이냐 성범죄의 개별 피해자에게도 쉽게 공감한다. 정인이나 김용균을 일반화해 학대받는 아동이냐 위험에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까지 공감을 넓히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왜 유독 여성 대상 범죄는 여성 일반의 문제로 확장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아동이냐 노동자는 남성과 무관하고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아서? 이들은 일자리를 두고 할당제를 요구하지도 않고, 신경 거슬리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지 도 않으며,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않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어두운 사회단면에 집중하는 사례가 많았던 '어떤 양형의 이유'보다는

좀더 사회학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이번 내용이 훨씬 와닿았다. 

집단주의적 갈등과 반목하고 대립하는 최근 양상에 피곤해져 있던 터라, 

계속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고, 의견들이 나온다는 것에서 위안을 느낀다. 

이제 사회구성원들이 좀 더 소수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