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진이, 지니

정유정작가는 글의 소재를 정말 철저히 조사해서 스토리의 틈이 없고

등장인물별로 시각을 바꾸어 가며 서술하는 특유의 설정은 한번 몰입하는 순간 속도감있게 빠져든다.

 

결말은 항상 희망차진 않지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아버지의 빚을 갚느라 식당 주방을 전전하면서도 어머니는 사자처럼 살았다. 자기 운명을 한탄하지도 않았고, 세상에 주눅 들지도 않았다. 그 유전자를 내게 물려주었을 뿐 아니라 똑같은 삶의 태도를 가르쳤다. 삶은 살아 있는 자의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전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살아 있는 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팬은 내게 아기만 보여준 게 아니었다. 주어진 일을 해낸 자신의 용기를 보여주었다.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더하여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일깨웠다. 살아 있는 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는 것도. 그것이 삶이 내리는 유일한 명령이라는 것도.
만약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대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였더라면, 삶의 한가운데에 죽음이 있다는 걸 인정했더라면, 나와 작별하는 법을 미리 배웠더라면, 지금의 나는 좀 달랐을까. 운명에 분노하는 대신 이것이 그저 내게 주어진 패라는 걸 인정할 수 있었을까. 떨지 않고 의연하게, 타당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