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계속 가보겠습니다


정의의 기준이 사람과 사건에 따라 달라지는 건 별론으로 하고,
조직의 의사와 반대되는 행동에 추잡스럽게 보복하는 것도 별론으로 하고,
저자 개인이 담당한 사건별로 대립하는 검찰의 입장이 비논리적이거나 당위성이 없는 건 아니다.
적당히 타협해서 현실에 안주해도 함부로 비난하지 못할 일인데
상명하복 그 자체, 검사동일체라는 그 곳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애잔하다.

저자는 특별하지 않다.
한때 부조리에 맞섰다가도 징계나 불이익에 굴복하는 이도 주변에 많을 터다.
본인이 당할 징계나 불이익에 가슴졸이는 평범한 인간이면서도 부조리에 맞서 버티는 용기를 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자의 깨어있는 양심에 응원을 보내며 앞으로 활동에 무운과 건승을 빈다.


종전에 제가 검사게시판에 올린 <논고문에 대한 생각>에서 말씀드린 대로 검사는 법정에서 피해자의 고통과 절망, 우리 사회의 분노와 자책, 피고인에 대한 연민과 충고 등을 모두를 대신하여 법정에서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재심 사건이어서 공소 취소를 할 수 없어 무죄가 선고되어야 할 사건이라면, 검사는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분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를 우리 사회를 대신하여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공안부 주장처럼 ‘동일한 행위와 증거를 놓고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 법원의 판단을 재단하는 것이 옳은지는 의견이 갈릴 수 있음'을 이유로 사실상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요? 의문을 계속 제기했지만 상급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저는 해당 사건에서 배제되었습니다. 하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는 소위 백지 구형이 피고인의 죄에 상응하는 구형을 해야 할,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의 구형인지 아직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사기> 이사 열전 편에 이르기를 '태산은 흙 한 덩이도 마다치 않기에 태산이 되고, 바다는 물 한 방울도 가리지 않기에 바다가 된다'고 하는데, 서로 다른 생각을 토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서 어떻게 검찰 발전을 기대하고, 소통을 통한 조직 상하의 일체화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잠든 척 하는 검찰을 눈뜨게 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삼국유사》 수로부인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용에게 수로부인을 빼앗겨 발을 동동거리는 순정공에게 한 노인이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 했습니다. 백성을 모아 물가 언덕을 치며 노래를 부르게 하세요. 용도 부인을 내놓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라고 했다지요. 까마득한 신라 시대에도 백성의 함성은 용조차 그 뜻을 꺾게 했는데, 하물며 대한민국 주권자 국민의 함성은 무엇인들 움직이지 못하겠습니까?

검찰의 거짓말에 속지 않는, 깨어있는 시민의 날선 감시와 비판만이 검찰을 바꿀 수 있겠지요. 함께 꾸는 꿈의 힘을, 결국 함께 나아가는 역사의 힘찬 발걸음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