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재수사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살인자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한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살인을 고백하며 시작한다. 

짝수 챕터는 수사본부의 수사흐름대로 서술되는 반면, 홀수 챕터는 살인을 정당화하는 살인자의 독백으로 서술된다. 

살인을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에 현재 사법체계시스템에서 계몽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 비판하며, 마치 사이비교주의 언어처럼 계몽주의를 수정한 사상을 주창한다. 철학적이어서 일정부분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이 또한 어찌보면 정신질환자의 궤변이므로 이해가 안가는 혼란스러움도 있다.

짝수챕터만으로 이루어졌다면 작품의 호불호는 크게 갈리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홀수챕터야말로 장강명식의 사회서사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사람을 죽이면 왜 안 되는가? 이는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반복해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같은 질문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가?
도스토옙스키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도덕의 중심은 사라지고, 인간은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다고 봤다 
'나는 인간이 진정한 고통을, 즉, 파괴와 혼돈을 결코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의식의 유일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실제로 싸구려 행복인가 아니면 고상한 고통인가?'
<죄와 벌>에서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용기 있는 사람이니 안락함 따위를 추구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니 고난은, 로지온 로마노비치, 위대한 것입니다.'
'고난 속에는 사상이 있습니다.
신계몽주의는 행복이 아닌 의미를 인생의 목적으로 제시한다. 그렇기에 의미 있는 불행이 의미 없는 행복보다 낫다고 설명한다. 의미는 서사속에서 생겨나며, 서사는 고통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고통을 통해 얻는, 불행 속에서만 붙잡을 수 있는 의미에 대해서도 신계몽주의는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신계몽주의의 인권 규범과 형사사법시스템은 의미의 훼손을 중죄로 간주할지 모른다. 인격권 같은 임기응변 없이 신계몽주의는 전근대인들이 명예라고 불렀던 가치에 대해 보다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