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작가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이야기 속에서 눈송이가 

그들의 죽음과 경하와 인선의 죽음의 경계에서 현실과 환상을 이어주고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는 역할을 하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쫄깃쫄깃한지 

최근 의미없이 묘사를 위한 묘사만 많아지는 감성적 글들과는 대조적인 느낌이 들어서 작가의 격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인 경하는 5월 광주의 비극에 대한 소설을 끝내고 그 학살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구인 인선은 어머니의 싸움을, 상처를, 기억을 메워가며 아파한다. 

현대 한국사에서 무참하게 자행된 비극은 개개인은 차마 감내할 수 없겠지만

인선의 어머니인 경심이, 인선이, 그리고 경하가 그러했듯이

그 죽음과 작별하지 않게 끊임없이 되새기고 기억을 놓지 않는 것이, 현재의 우리가 그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는 한 방법인 듯 하다. 

 

제주 4.3 사건이 비극이라는 이야기만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시대적 배경이나 내용에 대해 무지한 나를 알게 되었다. 

제주 4.3 사건을 비롯한 제1공화국 시대에 자행된 여러 비극적인 사건들을 미리 알고 읽는다면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