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보통 일베들의 시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이라 생각했다.
오죽하면 벌레 충자를 붙이기 시작한 최초의 집단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들을 또다른 형태로 혐오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지성과 도덕성이 떨어지는 이들로 규정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책 내용에 따르면 오히려 철저히 능력주의를 신봉하며, 체제에 순응하였으나, 그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분노가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고, 극단적인 능력주의가 혐오를 정당화한다.

일면 그들의 분노가 이해는 간다. 그러나 혐오가 집단으로 기능하고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혐오의 대상은 대부분 약자가 될 것이고,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이 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능력주의의 정글에서 일부분만 살아남는 사회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평범 내러티브를 내면화하여 현실적인 순응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일베의 멘털리티를 이루는 핵심이다. 따라서 일베의 혐오는 순응의 ‘의무’를 거부하는 모든 주체와 그들의 저항을 향한다. 여성, 호남, 좌파에 대한 일베의 혐오는 사실상 ‘순응하지 않음’에 대한 격렬한 분노다. (책 소개 중)

일베 이용자들이 품은 수치심은 타자화 과정에서의 동정심을 제거하여' '혐오 사회'의 문을 열어젖힌다. 이러한서술이 맞는다면, 타자의 고통을 억압하고 그 개별성을 거세하는 평범 내러티브의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 그 자체다. 일베 이용자 개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증상이지, 원인도 원점도 아니다. 한국 산업화의 원천은 혐오였으며, 혐오자들은국가가 그 발전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체계적으로 생산해낸 도덕적 · 정치적 산출물이다.
일베의 그림자란 각자의 특수한 경험과 환경과 조건이 무시되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름의 경직된 평가체계에 모두가 사활을 걸고, 그 결과에 따른 열패감과 모멸감, 그리고 빈곤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능력주의적 디스토피아의 도래다. 하물며 모멸을 주는 이들이 일베적 형식까지 취한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참혹할지는 말할 것도 없다.
평범한 삶이 도달 불가능한 것이 된 지금, 엉뚱하게도 그에 대한 좌절의 책임을 구조가 아닌 소수자에게 묻고있다고 할 때, 그래서 사회가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다고 할 때, 다시 사회를 만들어낼 새로운 도덕의 단초는능력주의가 아닌 평범함을 다변화하는 데 있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평범해지는, 즉 소박하지만 분명히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